2021 그리고 2022

바쁘다면 바쁘고 단조롭다면 단조롭게 흘러간 2021년인것 같다. 오늘은 2021년의 마지막 날.. 여느 때와 같은 10대 뉴스는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가족과 나의 지난 한 해를 돌아보는 기록을 적어보려 한다.

아이들

연초에 큰 다짐도 없었고 아이들이 코로나로 집에 있어서 더 정신없이 시작했던것 같다. 특히 호야가 코로나 이후 학교생활에 약간 갈피를 잡지 못하여 많은 시간을 이야기하고 같이 해야 했다. 내년에 있을 김나지움 지원으로 여전히 지금까지도 모두가 조금씩 스트레스를 받으며 지내고 있다. 빨리 지나가버렸으면 하는 마음도 있지만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게 무엇인지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호야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푹 빠지는 반면, 관심없는 일에는 시큰둥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취도는 높은 편이다. 그 성격에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으며 하는지… 옆에서 보는 내가 안타까울 때가 많다. 그래도 여러 모로 성숙해지고 성장하는 부분이 많았던 한 해였다. 이제 슬슬 2차 성장이 시작되는 듯 하니 내년에는 바깥에서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야겠다.

시우는 가장 아이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 애교에 누구나 본인의 감정을 알 수 있게 표현하는 솔직한 성격덕에 자신의 감정을 충실히 공유하고 또 공감받으며 지낸다. 막둥이라 누나, 형을 보고 배우는 것들이 많아 빨리 배우는 것도 있지만 시우는 자기가 싫은 일이라도 집중해서 하는 성격이라 주어진 일을 하는데 망설임이 없다. 학교에서도 반장을 하면서 반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고 심지어 반에서 가장 인기 많은 여자친구한테 프로포즈를 받는! 경험도 하였다. 그 뒤의 대처가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황당해서 우리에게 큰 웃음을 줬다. 이제 성적표가 점수로 나오는 3학년이 되었는데, 시우 반 만의 특징인지 아이들이 점수에 민감하고 관심이 많아 보이는게 시간이 지날 수록 이 곳 독일도 한국처럼 이런 객관적이고 눈에 보이는 점수에 민감해진다는 느낌이 든다.

지우는 늘 그렇지만 올해는 특히 더 즐겁고 행복한 1년을 보낸것 같다. 학교가 너무 좋고 재밌다는 말은 하루 걸러 하루씩 이야기 하고, 점점 관심이 꺼져가는 듯한 바이올린에 갑자기 불이 붙더니 하루에 2시간이 넘게 스스로 연습하고 있다. 여자 아이들 특유의 그룹 문화에 조금 적응하는 듯 하더니 역시 자기 맘에 안드는건 아닌건지 여기저기 다른 친구들도 만나고 사귀면서 관계를 넓혀가기도 했다. 자세한 이유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공부에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 이상으로 불이 붙어서 나름 공부도 열심히 하고 좋은 결과를 받고 있다. 몇몇 선생님들이 수업 시간에 지우를 띄워주고 다른 친구들을 도와주게 하는데 이럴 때면 아주 신이 나는것 같다. 무엇이든 열심히 하고 더 하려고 하니 나는 지우와 발 맞춰주기가 버겁지만 선생님들은 좋아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어느 날은 친구들 얼굴을 관찰하고 오더니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가 제일 이쁜것 같다는 말도 하고 ‘나는 외로워, 남자 친구가 필요해’ 라는 내용의 시를 영어로 쓰는 누가 봐도 10대 여중생! 승마 캠프도 다녀오고, 늘 그렇듯 올해도 가장 알차게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들

정은이는 가을까지 독일어를 배우느라 더욱 바빴던것 같다. 여전히 정성들인 아이들 도시락과 여러 집안 일을 같이 하면서도 4시간씩 수업을 듣고 또 공부를 했으니… 그 결과로 올 해 정은이의 영주권을 받게 되어 보람도 있었고 의미도 있었던것 같다. 나는 딱히 일 말고는 한 게 없는 것 같다. 회사일이든 집안일이든 눈에 보이는 대로… 우리 둘 다 나이들어간다는 것을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느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운동을 단 1일… 했다고 기억하고 있다. 아이들이랑 농구, 산책정도 말고는 정말 몸을 움직이지 않았던것 같다. 가을 이후 우리 둘 다 코로나 백신을 맞고 몸 상태가 조금 이상하게 바뀐것 같은데 나는 그 뒤로 카페인과 알콜을 많이 줄이게 되었다. 3달 넘게

베를린에 직원이 늘어나면서 페이롤 컴파니를 통해 고용계약을 맺게 되었다. 여전히 프리랜서 신분을 유지하고 있어서 뭔가 내 일을 할 수는 있는데 할 일도, 시간 여유가 없다. 회사일은 기본적으로 양이 많고 여러 업/다운이 있어서 당연히 바빴다. 추가로 개발자를 채용했어야 했는데 해고를 하는 바람에 막판에 일에 치인것도 힘들었다. 삐걱거리던 QA파트를 내가 맡아 시니어 1명과 주니어/레귤러 5명을 채용했다. 온보딩에 팀빌딩에 전반적인 테스팅 환경 조성에 너무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이제 조금 굴러간다 싶을 정도로 가고 있다. 내년 초에 추가 인원들이 합류하면 혼자 잘 굴러가게 만드는게 목표다. 그 와중에 개발자 친구 한 명을 채용했는데 이번에는 조금 더 관심을 두고 가이드를 줘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갈 생각이다. 전 회사와 다르게 모두 내 손으로 뽑은 사람들인 만큼 더 애정이 생기고 책임감이 생기는 것 같다. 여름엔 회사일 말고 형이랑 프로젝트를 하나 했는데 ThreeJs로 게임을 만드는 작업이었다. 모바일 웹에서 동작해야 하고 웹사이트/서비스까지 붙이는 작업이라 많이 힘들었지만 즐거웠고 많이 배울 수 있는 작업이었다. 개인적으로 계속 배우고 유지하고 싶은 기술 스택이 ThreeJs 랑 WebGL 쪽인데 그 프로젝트 이후로는 손도 못대고 있다. 이 와중에도 늘 내만의 개인 프로젝트를 하고 싶었는데 모바일 앱을 만들지 게임을 만들지 고민하다 작은 게임 프레임워크를 만들어 놓고 정체되어있을 때 정은이의 조언으로 원래 해보기로 했던 간단한 모바일 앱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조금씩이지만 천천히 꾸준히 만들어 뭐라도 출시해 보는 것을 목표로!

여행

작년 폴란드 여행의 추억이 많아서 우리는 다시 한 번 폴란드 여행을 다녀왔다. 이번엔 아우슈비츠와 폴란드 남부지방 자코파네를 들렸는데 체력적으로 지쳐있을때 다녀온 여행이라 조금 힘들었지만 아이들과 많은 추억을 만들고 왔다. 유럽에서 순위권에 꼽히는 롤러코스터도 타 보고, 역사의 현장인 아우슈비츠와 자코파네의 멋진 자연을 보고 돌아왔다. 하지만 그 뿐… 당일치기 나들이 말고는 아무곳도 다녀오지 않았다. 코로나와 바쁜 일, 바쁜 일상 때문이라고 하지만 조금 아쉬운 마음이 있다. 한 편으로는 당일치기 나들이를 많이 다녀온것 같기도 하고… 내년엔 조금 더 기억에 남을 수 있는 작은 여행을 많이 다녀보고 싶다. 코로나 4차 유행이 오기 전에 출장으로 텔아비브에 다녀왔는데 일만 하다 와서 딱히 기억이 남지는 않는다. 이스라엘의 무질서함이 눈이 거슬려 마음이 불안했고 베를린 공항에 와서 질서 정연하게 정리된 주변을 보고 안도감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주변에서 여러 일들이 일어났는데 작년에 이어 사람들간의 관계에 대해 여러 번 생각할 수 있었던 일들이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는 이런 상황들을 보며 반면교사 삼아 우리 스스로가 성장할 수 있는 계기나 기회로 만들 수 있다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결국 모두가 그렇지만 비슷한 사람들 끼리 만나게 되는것 같다. 아이들 교육, 먹거리, 일, 관심사 등 무언가 비슷한 부분이 있어야 서로 배우고 발전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그 분들께 감사하고 또 앞으로도 더 가깝게 지내야겠다는 생각들을 하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또한 인간적으로 더욱 성숙해져야겠지…

내년의 가장 큰 이벤트는 무엇보다도 호야의 초등학교 졸업이 될 것 같다. 회사에서 만드는 게임이나 스스로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세상에 나올 가능성이 큰 시간이기도 하고 더 건강해 지기 위해 많은 노력을 시작하는 시간이기도 할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 온 가족이 건강하고 행복한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Technical softlaunch

지난 주 부터 만들던 게임의 기술적인 오류를 파악하고자 테크니컬 소프트 런치를 시작했다. 오랫동안 지원하지 않던 안드로이드 버전으로, 스토어 페이지를 새로 만들어 하루에 2000명 정도의 트래픽을 돌려 게임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 중이다.

몇가지 오류가 보이지만 치명적인건 없는것 같은데… 조금 자세한 로그가 필요한데 휴가 시즌이 겹쳐서 1월이 되어야 버전을 올려서 테스트 해 볼 수 있을것 같다. 개발자 하나 자른 뒤로 폭풍 인터뷰를 통해 개발자 1명, QA 4명을 채용했다. 이제 개발자2, 테스터 7명을 관리하게 되었다. 곧 채용할 개발자 1명과 테크아티스트를 포함하면 10여명의 인력을 관리해야 하는데 리드 개발자로서의 역할도 있기 때문에 조금 버거운 면이 있다.

팀에서 2022년에 어쩌면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할 가능성이 있는데, 그렇게 되면 거의 비슷한 규모의 개발팀을 꾸려야 하는데 그 때는 정말 관리만 해야 할까… 그건 그 때 가서 생각해야지…

1월 중순 – 말까지 테크니컬 소프트런치를 마무리 하고 2월엔 Monetisation softlaunch 가 계획되어있다. 기능 개발보다 부담이 덜하다면 덜하겠지만 이것저것 대응하는게 굉장히 손이 많이 가는 편이고 채용한 인력들의 온보딩을 신경쓰려면 여간 골치아픈게 아니다.

그 뒤에는 WW릴리즈가 기다리고 있을까? 2022년의 가장 큰 이벤트가 될 것 같다. 여름 전에 런칭하고 팀도 안정되어 제대로 된 휴가를 갈 수 있으면 좋겠다. 늦어도 1년이면 뭔가 트랙에 올릴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2년이 꼬박 걸리다니 세상에 만만한 일이 없다. 꾸준히 한 걸음씩 나가는 방법 말고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해고

뽑은지 1년이 안된 개발자 한 명을 해고했다. 팀에서 나는 개발과 테스트를 책임지고 있다. 숫자로 보자면 개발자는 나를 포함 3명, 테스터도 3명인데 4번째 개발자를 뽑는 중이었다. 지난 번 회사와 다르게 기민하게 움직여야 하는 프로젝트 특성 상 기술경험은 기본이고 자기주도적인 개발자와 함께 일하고 싶었다. 그래서 뽑았던 첫 번째 개발자는 잘 일하고 있는 반면 두 번째로 뽑은 개발자는 늘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결과를 보여줬다.

우리 게임의 세부적인 개발 방식은 인터페이스만 공유하고 내부 개발은 죽이되든 밥이되는 본인들이 알아서 개발하는 방식이다. 개발 패턴도 프로젝트 전반에 적용하는 방법은 하지 않으며 필요없는 라이브러리도 일체 쓰지 않는다. 함수형 개발처럼 각자가 모듈식으로 만드는 식이다. 빠른 결과가 나와야 하니 버그가 없고 인터페이스 조건만 만족하면 개발 완료로 생각하고 해당 모듈이 문제가 많다면 내가 다시 그 모듈을 만들어 교체하는 방식이다. 이것 하나가 우리팀에서 일하기 위해 꼭 따라야 할 규칙이다.

개발 퍼포먼스와 별개로 약간의 커뮤니케이션 이슈도 있었는데 이건 주로 영어보다는 본인의 자아가 너무 강해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는 부분에 있었다. 합의를 하고도 하지 않은것 같은 찝찝함… 자신의 결정에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최선을 다 하지 않은것 같은 결과물. 결국 오너쉽의 문제이자 소통의 문제였다.

이러한 제반적인 문제는 본인의 퍼포먼스 하락으로 이어졌고 결과물에 문제가 많음은 물론 일정도 늘 딜레이되었다. 본인은 오늘의 문제를 체감하지 못하고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상상속의 뛰어난 개발자 기준으로 기존 코드나 방향에 대해 불평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계속되는 일정 지연과 낮은 퀄리티를 개선해야 한다는 피드백을 여러 번 주었지만 크게 변하는 것은 없었다. 3주전 새로운 스프린트에 들어가며 나는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이번 스프린트 목표와 작업 리스트를 공유하고 본인이 측정한 예상 작업시간에 대해 이유없이 수락한 다음 모든 미팅과 업무를 방해하는 요소를 제거해 주었다. 그리고 그 리스트 중 죽어도 2주안에 끝낼 수 있는 작업만 가져도록 하였다. 우리 셋 중 가장 쉽고 작은 업무만 가져간 그 개발자는 역시나 2주 뒤에 그 업무를 끝내지 못했다. 타당한 이유가 있다면 일정이 딜레이 되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매일 업무 공유 시간에 문제없다, 내일 끝난다를 반복하다 데드라인 전날 끝내지 못하겠다고 하거나 끝냈다고 했지만 완성도가 70% 미만인 상황… 1주일의 시간을 더 주고 완성도를 높여달라는 요청을 했으나 돌아온 대답은 2주가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어떤 부분이 문제여서 이렇게 시간이 더 필요하냐고 묻자 여러 리스트를 주는데 대부분 본인이 지난 2주동안 완성했어야 하는 부분들이다. 그 중 1주일 치에 대한 업무를 내가 가져오고 새로운 데드라인에 동의했다. 그 1주일 짜리 업무는 내 손에서 반나절이 안되어 사라졌다.

스프린트 시작일로 부터 3주 째, 주말에 일하고 있는 티를 팍팍 내며 나한테 메세지가 온다. 업무하나는 빼고 다 끝낼 수 있다고…그리고 월요일이 되어 결과를 확인했는데 코드에서 일하기 싫다는 의지가 느껴질 정도였다. 그리고 또 똑같은 핑계… 일정 지연에 대한 이유가 뭐냐고 물어보니 내가 자신이 수립한 일정을 무시하고 더 짧은 일정을 요구했기 때문에 이것은 원래 일정에 맞춰가는거지 일정 지연이 아니라고 한다. 본인 입으로 말한 메세지들을 보내주니 말이 없다.

갑자기 다른 사람 코드 읽기가 힘들어 일정이 지연되었다고 한다. 이번 스프린트는 개발자 모두가 UI를 개선하는 부분인데 UI는 이 개발자가 조인했을때 만들어서 대부분의 코드가 본인 코드 뿐이다. 나는 어떻게 일했을것 같냐고 묻자 또 말이 없다.

이러한 경험은 익숙하다. 처음 조인 했을 땐 모두가 의욕적이지.. 그래서 허니문 기간이라는 말도 하고 최소 3개월, 길게는 1년… 시간이 지나면 진짜 그 사람이 보인다. 나는 왜 인지 모르겠지만 아주 동물적으로 이 변화를 잘 감지하는것 같다. 지난 회사에서 내가 해고했던 몇몇 개발자들의 공통점이 바로 이것이다. 초반에 오바하기, 빨리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본인의 성장 욕구에 우선한다는 것. 닫혀있는 귀. 객관적인 자기 평가 부족 등…

결국 문제를 본인 외부에서만 찾으려고 하는 것을 보고 나는 마음을 접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고용형태가 이스라엘-우크라이나 외주 업체 형태로 되어있어서 당일 해고가 가능했다. 월급을 더 받든 말든 그것은 모르겠지만…그리고 모든 똥들은 지금 내 앞에 쌓여있다. 짜증이 나지만 한 편으로는 다행이다. 이 똥들은 언젠가 누군가 치워야 하고 결국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 테니까.

사람은 많다고 절대로 좋지 않다. 사람이 적으면 느린것 같지만 제대로된 사람과 함께 일하면 결국 그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 다음 개발자는 더 신중하게 채용해야겠다. 개인적으로 한 가정의 가장의 직장을 잃게 한 것에 불편한 마음이 있지만 본인 표현만큼 대단한 개발자라면 곧 더 좋은 직업을 구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회사 대표가 이야기 해 준 바에 따르면 동유럽에서 채용했던 몇몇 개발자들은 회사 몰래 투잡을 뛰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퍼포먼스가 급격히 떨어지고 일정을 계속 딜레이 한다면 그 부분을 의심해 봐야 한다고… 이 개발자도 아마 그런 경우일지 모른다. 난 개인적으로 본인이 2잡을 하던 3잡을 하던 상관없다. 자신이 스스로 약속하고 그것을 지키려는 노력만 있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모든 것은 시간 앞에…

세상에 발가벗긴 채 던져진것 같았던 7년 전… 취업도 비자도 넘기 힘든 어려운 산 처럼 보였던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의 내 생활은 천국이나 다름없어야 하지만 시간 앞에 무뎌지는 다른 모든 감정들 처럼 이 또한 익숙해지고 무뎌져 이제는 아무것도 아니고 당연한 일상처럼 받아들여 진다.

지난 주 다녀온 텔아비브에서 잊고있었던, 낯설지만 익숙한 한국을 떠올릴 수 있었다. 지금의 한국이 아닌 내가 어렸을 때의 그 느낌들… 무질서한 거리, 노출된 공사장과 도로의 소음들 그리고 건조한 더위는 어떤 여름날 가족들과 산책 후 집에 돌아오며 느꼈던 그런 느낌이었다. 그 때 아빠가 지금의 내 나이 쯤 되었을까…?

불현듯 정은이와 아이들이 너무나 보고 싶어졌다. 내가 피곤하다는 이유로, 답답하다는 이유로 가족들에게 얼마나 많은 내 감정을 떠밀어 보냈던가… 상처주고 상처받고 가족이기 때문에 이해해주라는 나의 억지를 정은이와 아이들은 묵묵히 받아내고 있었을 것이다.

반성하고 또 반성한다. 일희일비 하지 않고 바다와 같이 큰 마음을 가진 남편이, 아빠가 되고자 또 다짐한다. 늘 안아주고 웃어주는 존재로 기억되고 싶다.

모든 것들은 다른 모든 것들이 그랬던 것처럼 흐르는 시간 앞에 괜찮아 질것이다. 기쁜일도 슬픈일도 공평하게 중간으로 수렴할 것이다. 내가 여유를 찾을 수 있는 틈이 바로 이 시간의 흐름속에 있을 것이다.

정말 다행이다. 내가 이루어 놓은 모든 것들이 나의 가족의 테두리를 지켜줄 수 있어서. 아이들이 철이 없을 수 있어서, 넘어질 수 있어서 그리고 나에게 불평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행복하지 않으면 누릴 수 없는 이 모든 것들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베를린 배우자 영주권 취득!


블루카드 홀더로서 본인의 영주권 취득절차는 비교적 투명하고 정형화 되어있어서 비록 그 형식이 매년 조금 달라질 지언정 일정한 조건을 갖추면 취득에 이르기 까지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영주권 취득 후 가족들의 거주허가는 배우자인 경우 기존과 동일하게 4년 연장, 아이들은 영주권에 준하는 16세까지 거주허가를 받게 된다. 당시 외국인청에서 정은이는 1년 뒤 영주권에 지원할 수 있으니 지원하라는 안내가 있었는데, 외국인청에서 구두로 받은 정보는 60개월이상 거주와 언어능력 증명이었다.

집에 와서 정은이의 영주권을 받기 위해 이것저것 찾아보니 배우자 영주권에 대한 정보에 대해서 나와있는 부분이 많지 않았다. 어찌되었건 4년의 시간이 있고 언어증명은 해야 하는 것이니 일단 B1 을 취득하자…라고 했던게 2017년.. 이사 정리와 아이들 학교, 나의 이직, 코로나, 지우 김나지움 등 굵직한 이벤트들을 겪고 나니 어느새(?) 4년이 지나있었다.

그렇게 일단 다시 연장을 하자고 외국인청 예약 신공을 발휘, 외국인청에 방문했던게 지난 3월… 늘 그랬던 것처럼 블루카드 홀더의 배우자/가족 거주허가 신청으로 예약을 하고 갔는데 직원이 첫 마디부터 원래 이곳(블루카드 전용 창구)에 예약하면 안되고 일반 비자 사무실로 예약했어야 한다고 한다. 그래도 연장을 해주겠다면서 서류를 보다가 ‘응? 너 영주권 자격이 되는데 내가 영주권 되는지 확인해 보고 처리해 줄게!’ 라는 반가운 소식을 듣고 대기했었는데 결과가 나와 들어가보니, ‘영주권은 서류가 미비해서 일단 6개월 임시 비자를 줄게 어차피 영주권 신청할거면 이게 더 싸니까~’ 하며 여권을 돌려준다.

집에 와서 시간을 계산해 보니 B1시험보고 결과나오는게 한 달 정도 걸리니 최대한 빨리 시험을 봐야 하는데, 의외로 완벽주의 정은이가 일단 학원을 다시 다녀보고 싶다고 한다. 난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시험을 위한 시험이라 한국식으로 요령 파악해서 바짝 준비하면 B1정도는 무난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설득에 실패.. 일단 VHS로 온라인 코스를 등록하고 광클릭을 통해 8월 외국인청 약속도 예약해 두었다. 그 즈음이면 모든 준비가 되어있겠지…라는 생각으로.

하지만 우리집이 언제 우리한테 공부하거나 개인적인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를 줬던가? 그래도 열악한 환경 속에서 정은이가 열심히 공부했지만 예약일 전에 시험을 보고 결과를 받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일단 제대로 4년 연장을 하고 영주권을 지원하자는 생각으로 오늘, 예약일이 되어 새벽부터 외국인청으로 출발했다.

대기실에서는 늘 그렇듯 수 많은 부정적인 시나리오가 그려진다. 불친절한 직원이라 정상적인것도 트집잡아 여러번 헛수고도 할 수 있는데 내가 서류라도 다 못챙겼다면.. 또 임시비자를 준다면.. 연장했는데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면… 마음은 이미 외국인청의 다음 예약을 잡을 준비를 하고 있는데 우리 차례가 되어 직원을 만나러 갔다.

곰돌이 처럼 푸근한 인상의 직원은 여러가지 질문은 했는데, 일을 하고 있나? 남편이 일하면 서류를 달라. 집은 아파트니? 집을 산거니? 빚은 다 갚았니? 빚이 없음 매달 집 유지비로 얼마를 내니? 오 좀 많이 내는데 집이 커? 집 크기가 얼만데? 오 큰집에 사네 잘했어. (정은이 온라인 코스 증명서를 보더니) 손에 들고 있는 그건 뭐야? 언어증명? 일단 줘봐. 내가 확인해서 부를게 기다려! 까지… 챙겨간 집 계약서와 큰집에 사네 잘했어(왜 이렇게 말했을까?) 라는 말 이후로 고개를 갸웃거리던 직원의 태도가 조금 변해보였다. 그렇지 우리가 뭐 빌어먹고 그러지는 않을거야..

다시 결과가 나와 직원과 마주한 우리… 직원 왈, 너한테 영주권을 줄거야, 그러니 지문 찍고 여기 사인하고 어쩌고 저쩌고… 엥? 소득 증빙도 대충 2달치 급여만 보여주고 연금정보는 출력도 하지 않았고 언어 증명도 없는데 이걸로 되는거야? 우리가 그러거나 말거나 곰돌이 직원은 이것저것 서류를 정리하고 도장을 찍더니 이제 돈내고 가~ 카드는 곧(8주 뒤에) 갈거야! 한다.

마치 예상했다는 듯 덤덤하게 문을 나온 우리는 꺄하하 웃으며 아무도 없는것 같았던 자동 수납기 근처의 직원이 우릴 보고 웃으면서 ‘그래..거기에 돈 내는거야’ 라고 하기 전까지 두 손을 맞잡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독일의 공무 처리는 늘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서 그 누구의 경험담도 참고만 해야 했는데 우리의 오늘 경험담이야 말로 어디 공유하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곰돌이 직원이 우리를 잘 봐준 탓이었겠지… 얼마나 예의 바르게 서있었는데..

영양가 없는 글이지만 이제 온 가족이 거주허가에 문제 없이 독일에 살 수 있게 되었다. 뭐..남들은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다 되는거라고 크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신경쓰이던 문제 중 하나였기에 마음이 굉장히 후련하다. 이제 뭐 열심히 돈 벌고 쓰고 살면 되겠네~

시우와 루치아

이번 방학이 끝나면 시우가 벌써 3학년이 된다. 막둥이라 아직도 아기같은 시우.. 우리 눈에는 귀엽게만 보이는 막둥이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아이들 중 가장 터프하고 과격한 아이인것도 사실이다. 머릿속에 생각과 감정이 바로 표정과 말로 나오는 성격이라 기쁠때나 슬플때 자기 감정에 굉장히 솔직하고 그것을 잘 표현하는 장점이 있는 반면, 조금 참거나 숨기면 다행인 감정들 까지도 바로 나와 불필요한 시비나 다툼이 생기기도 한다.

스스로를 컨트롤 하기 어려웠던 유치원 시절엔 소리도 많이 지르고 그랬지만 이제는 많은 부분 컨트롤이 되는것 처럼 보인다. 치고받고 싸우면 안된다는 것은 유치원 부터, 소리지르고 화내는건 그룬트슐레부터 바꾸려고 했던 부분인데 지금은 화내야 할 때가 아니면 화를 내지 않을 정도이고 대신 즐겁고 기쁜 감정은 예전 처럼 잘 표현하기 때문에 친구들도 많고 어디에 있든 분위기 메이커가 된다.

얼마전 짧은 여행을 다녀오는 차에서 시우가 고백하듯 몇가지 이야기를 알려주었다. 우리에게 말한적은 없었는데 자신이 1학년때 많이 싸우고 다녔다는 이야기였다. 사실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는데 이미 같은 반에서 유치원 대장 출신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몇몇 다른 유치원 출신을 제외하고 시우를 건드는 아이는 없었는데, 같은 반도 아닌, 같은 학년도 아닌 상급생이 시우를 괴롭히는 일이 종종 있었다.

독일에선 이렇게 하급생들을 그냥 아무 이유없이 괴롭히는 경우가 있는데 호야의 경우 이를 목격한 지우가 여럿을 응징하였고 이후엔 호야반 친구들이 똘똘 뭉쳐 서로를 보호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지우가 두 동생을 모두 챙길수는 없었겠지… 결국 2학년 몇놈들이 시우를 괴롭혔는데 울거나 찌그러져야 할 시우가 오히려 달려들고 반격을 하니 이 괴롭힘이 한번으로 끝나지 않았나 보다. 더구나 상대 중 한 놈은 시우 담임선생님의 아들!

2-3 명이 몰려와 시우를 괴롭히는 탓에 시우도 친구들을 끌고 같이 싸웠다는데 다른 친구들은 시우같지 않으니 나가 떨어졌을 테고 시우만 몇번 같이 싸웠다고 한다. 시우 말로는 대부분 자기가 이겼다고 하는데, 이 말이 거짓말 같지 않은게 시우가 때릴땐 보통 아이들처럼 팔을 휘두르는게 아니라 한주먹 한주먹 정확히 코를 노려 뻗기 때문에 어린 애들 싸움에 시우가 지는 경우는 보통 없다(대부분 코피를 흘리며 패배하는것 같다). 12월 생이라 동급생 중에 나이가 많은 편이고 법이 안바뀌었다면 사실 같은 학년이라 더 그럴 수도 있다(형과 누나는 1년씩 일찍 학교에…)

유치원때도 몇번 싸운적이 있었는데 대부분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는 애들을 때려주고 선생님 처럼 굴어서 난감했던 기억이 있다. 나쁜 짓을 못하게 하는건 맞는데 때리면 안된다…근데 그 아이는 자꾸 시우를 때린다… 그래서 참다가 코를 한대 때렸더니 코피가 나더라.. 이런 식으로..

하루는 그 2학년 아이들 셋이 등굣길에 시우한테 또 시비를 걸어서 운동장에서 다툼이 있었는데 마침 그곳을 지나던 루치아가 그 상황을 보고 갑자기 달려와 2학년들 중 가장 작은 아이의 배를 퍽! 때리고 으악! 하면서 다시 교실로 도망쳤다고 한다.

우리 루치아로 말할것 같으면 시우의 유치원 동창이자 지금도 같은 반인 시우의 가장 친한 여자(사람)친구로, 그 나이때의 지우 못지않게 야무진 아이다. 시우가 처음 유치원에 간 날부터 정은이한테 유치원에 대해 설명해주고 늘 시우가 더 잘할 수 있게 가르쳐 주는 똑순이! 여자친구이지만 시우랑 노는것도 너무 잘 맞고 재밌어해서 우리집에서 자고 간 적도 있었다.

이 단짝친구 루치아가 보기에 시우가 큰 아이들한테 당하고 있으니 자기 딴엔 용기를 내서 한 명을 처리하고 다시 도망간 것이다. 2학년으로 올라가서는 선생님한테 이야기 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꿔서 이제 괴롭히는 아이들은 없는듯 하다.

방학이 1주일 남은 오늘, 루치아가 말도 없이 놀러왔다. 지우는 캠프에 가고 없는데 호야랑 시우랑 루치아 깔깔거리는 소리가 온 동네를 채운다. 볼수록 이쁜 루치아! 우리 아이들이랑 이렇게 계속 친하게 크면 좋겠어 🙂

나는 어떻게 말하고 있지?

나는 스스로 생각해도 긍정적,낙천적 그리고 이상지향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반대의 성격의 없지는 않을 것이다. 세상에 무엇도 흑과 백 둘로 나눌 수 없듯이… 부정적이고 현실적인 성격이 나쁜건 아니다. 오히려 많은 부분에서 이상적이고 낙천적인 성격은 나에게 큰 시련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결국 필요와 상황에 따라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으로, 이상적이거나 현실적으로 생각해야 할 부분이 있다. 이런 면에서 나와 정은이는 서로가 놓칠 수 있는 부분을 잘 잡아줄 수 있었던 것 같다. 문제는 내가 ‘No’ 라고 해야 할 때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억지스러운 인간관계를 끌고가기도 하고, 불필요한 물건을 사거나, 소비를 집중해야 할 때 그렇지 못하고 큰 결정을 내리는 것에 주저하는 점들도 많다. 몇몇 부분들은 정리할 수 있었지만 아직도 나 스스로의 감정을 지키는데 어려움을 느낀다. 쉽게 말해 내 기분보다 다른 사람의 기분을 우선하거나 다른 사람의 기분에 내 기분이 쉽게 움직이는 일이 많다.

처음엔 좋은게 좋은거라 생각했지만 대부분의 경우 나 스스로 납득하지 못하면서 상대방의 기분에 맞춰주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맞추고 모두 행복하면 좋겠지만 내가 납득이 안된 그 감정이 내 안에서 진실로 녹아들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거짓으로 공감하게 되는 결과가 되어 나도 상대방도 만족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시우를 보고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낀다. 시우는 자기 감정에 매우 솔직하다. 생각하는게 바로바로 입으로 나와서 시우가 어떤 식으로 생각하는지 다 알 수 있다. ‘아빠가 그렇게 말해서 나는 속상해’ ‘나는 지금 너무 기뻐서 다리가 떨릴 정도야’ ‘형이 나쁘게 말해서 너무 싫어’… 이렇게 솔직한 마음을 듣고 있자면 내 생각에 공감하지 않더라도 오히려 내 쪽에서 시우의 생각에 진심으로 공감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서로 솔직하기 때문에 서로 절충점을 찾는 대화의 과정이 힘들지 않았고, 대화의 간극에서 나오는 감정의 차이가 크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시우를 거울삼아 비추어 나 스스로에게서 알아낸 또 한가지는 바로 나의 대화 방식이었다. 시우는 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뿐 상대방에게 무엇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나는 나 스스로의 감정을 감당할 수 없는 경우, 주로 상대방에서 요구하는 표현을 많이 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좀 그만해’, ‘왜 그래?’. 이 발견은 사실 스스로 조금 충격을 받을 정도였는데 결국 이 말들에서 상대방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은 내가 상대방을 ‘비난’하고 있다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 정은이나 아이들을 비난 하고 싶었던 걸까? 비난과 함께 책임을 미루거나 책망하는 말로도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정말 상대방이 느끼는 그 감정들이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이었을까? 당연히 아니다. 난 그냥 ‘힘들다’, ‘기쁘다’ 혹은 ‘슬프다’와 같은 감정을 보여주고 공감받기를 원했을 뿐 무언가를 뜯어 고치거나 원망하거나 비난하고자 하는 마음은 없었다. 일하거나 다른 사람한테는 내 감정도 잘 전달하고 대화도 잘 하지만 가족들에게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많이 부끄러웠다.

그래서 찍어야 할 마침표 하나를 얻게 되었다. 내 감정을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공유하는 것.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이나 정보가 큰 차이 없이 상대방에게 전달되도록 생각해서 말하고 행동할 것.

굳어버린 습관도 많을 터라 바로 잘 해나갈 자신은 없지만 무엇보다 큰 문제라 생각하고 있으므로 이곳에 먼저 기록하고 노력하고자 한다.

끝이 없다.

지난 1년은 이라고 시작하고 싶지만 사실은 그 전에도 그리고 그 전에도… 라고 이야기 해야만 할 것 같다. 그렇게 지난 시간들을 정말 열심히 살아왔다. 코로나를 떠나 재택근무를 하게 되어 집에 있으면서 집안일과 아이들 그리고 원래 신경쓰고 있던 다른 일들까지..

어느 날은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멈추지 않았던 시간도 있었다. 익숙해지고 요령을 찾게 되면 그래도 조금은 덜 힘들 수 있지만 한 사람이 물리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직업으로 보자면 수 많은 일들과 문제들을 해결한 결과로 이제 두 번째 Softlaunch 를 시작하였다. 아주 마지막 그 순간까지 이런저런 버그와 실수 그리고 시행착오로 제대로된 생활이 불가능했다. 후련하고 뭔가 바뀌는게 있을거라는 기대는 안했지만 뭔가 답답한 이 기분… 내 부족함이 아닌 다른사람의 부족함을 도와주고 메꿔놓았더니 그 삽자루가 여전히 나에게 쥐어져 있는 기분에 굉장히 우울하다.

가족이나 집안의 일이야 곧 나의 일이고 또 언제든 조절할 수 있으니 이런 생각은 들지 않지만 일은 조금 다르다. 그렇다고 손을 놓자니 배에 나온 구멍에 물이 들어오고 있는 걸 그냥 보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이래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일해야 한다. 우리 팀도 불과 1년 사이 많이 사람들을 내보내고 다시 뽑았다. 다행이 개발은 좋은 사람을 뽑아 잘 하고 있지만 이제 규모도 커지고 업무 처리용량이 한계에 다다른 상태라 새로운 사람을 채용해야 한다.

아이들은 조금씩 좋아지고는 있지만 늘 싸우고 티격태격하는 상황이 너무 힘들다. 나 또한 굉장한 감정 노동을 하고 있는 와중에 내 기분은 마음 깊은 곳에 눌러담고 이곳 저곳 불이난곳을 찾아 다니며 또 다른 감정 노동을 해야 한다. 가족 구성원이 많고 다들 성격도 다르고 원하는 것들도 다르니 갈등이 있는 건 당연하지만 그런 갈등이 감정의 상처로 바뀌고 당연히 당사자들은 그러한 상처에 대해 신경쓰지 않기 때문에 3자, 주로 내가 그 마무리를 진행해야 한다. 끝이 나지 않는 두더지 게임처럼 한 곳을 누르면 한 곳이 터져나오는 상황이 얼마나 계속되었는지 모른다.

이제는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마음에 억지로 참아가는 마음으로 나 또한 다른 하나의 폭탄이 되어버린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근본적인 문제보다 눈 앞의 문제를 해결하기 급급하니 그렇게 된 건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이 순간 나는 그냥 답답하고 우울하다. 나 또한 두더지 게임 속의 두더지가 되어 튀어 나올때 마다 두들겨 맞더라도 소리한번 지르고 내 감정을 쏟아내 버리고 싶다. 누군가 치워주겠지, 아니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그래서 다들 힘들고 외롭다고 하는것 같다. 나도 힘들고 외롭다. 나도 소리지르고 싶다. 그냥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싶다. 내가 긍정적이고 낙천적이라, 화를 잘 풀어서 모든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살고 싶지는 않다.

일이 버겁거나 집에서 힘들거나 이런 것들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냥 내 마음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아니 내 마음이 이해 받았다는 기분이 절실하다. 너무 오랜 시간동안 나 혼자만의 생각에 갇혀있는 것 같다. 나는 사라져 버리고 역할로서만 존재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에게 이런 부정적인 기분을 만드는 모든 것들을 지워나가야겠다고 결심했다. 끝은 있다. 내가 잡고 놓지 못해 끝이 안나는 것 뿐이다. 한 번 사는 인생, 뭐가 대단하다고 그렇게 울고 불고 잡고 놓고… 그래 어쩌면 오늘 이 결심을 하기 위해 벼랑 끝으로 몰아왔던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그만할래!

2020년

모두의 기억 속에 여러 의미로 오래 기억될 2020년이 이제 다 끝나가고 있다. 코로나라는 전 지구적인 이슈로, 그리고 그와 관련된 여러 이야기가 있겠지만 그와 별개로 역시나 올해에도 많은 일이 있었다. 늘 많은 일이 있었지만, 올해는 조금 다른 의미로, 약간은 스스로 성장을 많이 경험한 한 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럼 과연 올 한해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중학생이 된 지우

우리의 사랑스러운 딸, 지우가 김나지움에 입학했다. 그룬트슐레 전학 후 마음이 맞는 친구도 없고 선생님들도 계속 바뀌는 과정에 속상해하며 3년을 보냈는데.. 김나지움에 들어가서 원래의 씩씩하고 에너지 넘치는 지우의 모습을 연속으로 하루도 빼놓지 않고 보여주고 있다. 오직 30명 만이 뽑는 학교에 이런저런 시험을 치르고 들어간 학교.. 결과가 나오기 가지 두 달이 넘도록 속으로 긴장해 있는 지우를 보면서 잘 될 거라 말을 해 줬지만, 우리도 불안하긴 마찬가지였다. 코로나 때문에 학교를 못 가면 속상해 울음이 날 정도로 즐겁게 학교생활을 하고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도 어쩜 그렇게 예의 바르고 착하고 예쁜지.. 우리도 덕분에 지우 친구 부모님들과 친해지고 한집과는 굉장히 친해져 즐겁게 서로 만나며 지내고 있다. 지우는 부쩍 커서 이제 손, 발은 엄마보다 더 크고 키는 3㎝ 정도 차이가 나는데 내년엔 엄마보다 더 크게 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매일 보고 있지만, 적응이 안 되는데…. 내년에 정은이보다 더 크면 어떻게 될는지… 사춘기에 다른 아이들처럼 힘들게 하지 않고 늘 엄마·아빠 동생들 생각에 무엇이든 즐기고 열심히 하는 지우가 진심으로 고맙고 부럽기만 하다. 내년엔 또 얼마나 즐겁게 보낼지 내가 생각만 해도 즐거워진다.

이직, 반 프리랜서로의 삶 시작

AAI 에서 프로젝트 전반을 관리하고 전략을 수립하고 구현해 가는 과정들은 즐거웠으나 경영진의 의사결정을(대부분 부정적인) 내 의견으로 포장하여 전달하는 일들이나 이런 식의 구세대적인 경영 방식에 적응하기 힘들었던 나는 굉장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것 같다. 그 일을 그만둔 것만으로도 굉장한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거기에 이스라엘의 최대 모바일 퍼블리싱 회사에 독립된 랩을 차려 그곳의 개발 책임이지 메인 개발자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평소 원하던 리모트 포지션에 내가 독일에 있는 관계로 프리랜서 형태로 계약을 하게 되어 다른 일들을 할 수 있는 기회도 얻게 되었다. 회사생활의 안정성과 프리랜서로서의 자유로움을 동시에 얻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 하는 업무 또한 내가 좋아하는 일들만 골라서 하니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거의 제로에 수렴한 일 년이었다. 유니티와 모바일 게임 전반에 대해 더욱 깊이 있게 배우게 되었고 똑똑한 개발자 한 명을 채용해 역시 스트레스 제로 레벨로 같이 일하고 있다. 네이버에 있을 때도 느꼈고 AAI에서 불가항력적으로 여러 사람과 일할 때도 느꼈지만 개발은 사람이 많다고 잘 되기 어렵다.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가 많다. 내년엔 조금 더 확실한 방향이 정해지겠지만 노력한 만큼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면 좋겠다.

진실된 관계에 대한 고민

독일에 오기 전부터 많은 관계를 정리하고 가능한 진실한 관계만 맺으려 노력해왔다. 독일에 와서는 같은 한국 사람이라는 이유로 쉽게 친해질 수 있었지만, 그만큼 진실하기는 어려웠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는 약간 이러한 부분에 극단적으로 예민해 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끊어버린 관계도 많다. 물론 미안하고 안타깝지만 이건 우리가 잘나고 그들이 못난 것이 아닌, 우리가 잘하고 그들이 못한 것도 아니기에 우리 입장에서 설명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냥 우리와 다른 방향을 보고 있을 뿐이지만 우리는 모든 사람을 챙기고 그 관계를 유지할 자신이 없기에 그런 관계는 그냥 내버려 두지 않고 끊어내려 노력하는 편이다. 서로 배울 수 있는 것은 언제든지 있겠지만 우리 주변엔 늘 보고 싶고 만나서 배울 수 있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시간이 없고 여유가 없어서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가족을 빼고 손에 꼽을 만큼의 소중한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 그리고 가능하면 이러한 관계를 만들어가고 싶다.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 진실하지 못한 사람, 성장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닌.. 서로 배우고 성장할 수 있고 늘 솔직하고 진실한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

폴란드 여행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남부 유럽이나 비슷한 곳으로 놀러 가고 싶었지만, 코로나 제한이 완화된 기간에 폴란드에 다녀오기로 했다. 관광보다는 약간 먹거리 투어의 느낌으로 바르샤바로 600km 넘는 길을 다녀왔다. 큰 임팩트는 없었지만, 그냥 가족들과 함께하는 것만으로 즐거웠던 시간이었고 바로 이웃 나라 치고는 달라 보이는 여러 풍경과 문화 그리고 음식을 경험하는데에도 즐거웠었다. 아이들이 조금 크고 해 본 첫 여행이라 더 재미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린 그냥 뭘 해도 재밌는 건지도..

정원가꾸기

코로나로 집에 있는 동안에도, 일로 바쁜 와중에도 약 4-5개월을 하루 한 시간 이상씩 정원 관리에 쓴 것 같다. 여러 시행착오로 인해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잡초제거, 죽은 잔디/이끼 긁어내기, 흙 보충, 잔디 심기, 스프링클러 설치, 파빌리온 설치, 창고 만들기 등으로 쉴 틈 없이 시간을 보냈다.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아직도 이끼가 많고 잔디가 빽빽이 자라지 않았다. 이건 내년 봄부터 올해 알게 된 노하우로 쉽게 개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년엔 어닝 설치와 정원에 전기설치가 아마도 큰 프로젝트가 될 것이다.

홈오토메이션

날이 추워져서 정원일 하기가 어려워져서 그간 미뤄두었던 홈오토메이션 프로젝트를 다시 시작하였다. 거실과 화장실을 제외한 전구를 다 교체하고 통일하는 작업을 하였다. 그리고 난방 조절을 위한 조절기 설치 및 조명을 위한 스마트 스위치까지, 새로운 스마트 도어록까지.. 그리고 끝판왕으로는 이 모든 별개의 시스템을 통합 관리하기 위한 솔루션으로 라즈베리파이에 홈어시스턴트를 설치하여 연동했다는 것.. 예전에 애들이랑 레트로파이하다 처박아 놓은 3 모델에 무려 도커까지 올려 홈어시스턴트와 홈매틱 CCU까지 돌리고 있다. 이 또 한 거의 무한에 가까운 시행착오로 정은이한테 대체 돈 들여 왜 자꾸 불편하게 만드냐는 불평을 들었지만, 묵묵히 시스템을 개선해 나가고 있다. 이제 남은 건 거실/부엌 조명인데 아직 우리 집 거실 인테리어가 완성되지 않은 관계로…. (3년이 넘었는데) 2021년 목표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싶다.

hochulsong.com

형과 조그마한 프로젝트를 하나 한 것을 계기로 내 이름으로 된 도메인을 구매하고 그곳을 중심으로 나만의 포트폴리오/프로젝트 사이트를 만들기로 하였다. 지금은 아무것도 없지만, 이곳은 가족이 아닌 나의 관심사만을 한정하여 꾸미고 싶다. 지금은 주로 ThreeJS 나 웹 접근성이 강한 기술 위주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 흐지부지해지지 않도록 열심히 할 생각이다.

상태회복 선언 2020년.

블로그에 써 놓은 것처럼 이제야 원점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고 선언할 수 있었다. 사실 그 변화를 어떻게 정의하겠냐마는 그 글 하나를 계기로 많은 후회를 떨쳐낼 수 있었고 내일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불과 몇 달이라는 시간이지만 생각도 행동도 많은 것이 바뀌게 되었다. 물론 긍정적인 방향으로..

운동

많은 사람들이 공통으로 경험하고 있겠지만 홈오피스+코로나의 영향으로 움직임이 없이 먹기만 하니 몸무게가 78킬로를 찍게 되었다. 같은 키에 68킬로 몸무게로 살았었는데 +10킬로가 되어 굉장한 위기의식을 느끼게 되었다. 그렇다고 먹는 즐거움을 포기할 생각은 전혀 없기에 미루고 미루던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주 종목은 조깅으로 아직 제대로 하고 있다고 말하긴 부끄럽지만 그래도 조금씩 열심히 하고 있다. 4개월 정도의 기간 동안 4킬로 정도 빠지고 체력이나 몸도 많이 좋아진 걸 느끼고 있다. 2021년에는 조금 더 정기적으로 하며 다른 근육운동도 병행하는 것이 목표이다. 정은이도 그 전에 운동을 시작했는데 확실히 근육이 많이 붙는 게 보인다.

쓰고보니 나 스스로가 많은 여유를 찾은 한 해였다는 생각이 든다. 집에서 일하며 정은이,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집안일도 많은 부분을 해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아 올해도 힘들었다’라는 느낌이 없고 ‘아 올해는 재밌었다’라는 생각이 가득하다는 것이 놀랍다. 호야가 태어나서 6개월 정도 매일 행복하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행복이 다시 시작되는 기분이다… 2020년이 그것을 위한 준비 기간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될 정도로.. 2021년에는 더욱더 행복하게 보내야지!

40살 그리고 20년

10월 28일은 우리가 만난 날이다. 때는 무려 2000년으로 그 내용에 대해서는 이 날이 올 때마다 블로그에 여러 번 썼던 것 같다.

매 년 이렇게 그 때를 추억하고는 하는데 그 숫자가 더해갈 수록 기분이 이상해 진다. 이렇게 긴 시간을 같이 있다니… 사랑과 좋아하는 감정과 함께 너무나 익숙하고 편안한 상대로, 나의 삶이 우리의 삶으로 느껴지는 것도 벌써 오래전 일이다.

우리 둘 다 올해 만으로 40이 되었으니 그 시간의 반 만큼을 서로의 옆에서 함께 살아왔다고 생각하니 뭔가 뿌듯함이 몰려온다.

아직도 매일 둘이서 수다 떨고, 재택 근무 시작한 이후로 꼭 붙어있는것도 너무 좋다. 물론 싸우기도 많이 싸우지만 서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로 삼으며 그렇게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다.

아이들이 어려서 힘들었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얼마나 아이들이 잘 커주었는지 매일 매일 우리는 정말 행복하고 잘 살고 있다고 서로 이야기 하고 있다. 뒤늦은 후회가 없도록 건강도 챙기고 서로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도 여전히 답은 없지만 고민하고 이야기 하는 요즈음의 시간들이 참 좋다.